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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s BIBLE

고난 주간이란 무엇인가? (2) -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by 버닝리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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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 주간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종려주일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첫째 날 행적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의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심을 묵상하는 한 주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고난 주간의 수요일까지를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종려주일과 수요일까지의 고난 주간 이야기는 아래에 링크를 참조하시고 목요일부터의 예수님의 고난 주간 동안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4.03.21 - [REE's BIBLE] - 고난 주간이란 무엇일까? - (1)

 

고난 주간이란 무엇일까? - (1)

고난주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무슨 고난이 있었기에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한 주 동안의 예수님의 행적과 고난에 참여하는 한 주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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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 [REE's BIBLE] - 종려주일이란 무엇일까?

 

종려주일이란 무엇일까?

여러분은 종려주일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종려라는 말은 야자나무의 잎을 말하는데요. 왜 야자나무 잎의 이름을 빌려와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예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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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이란?

 고난 주간이 무엇인지는 서론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의 예수님의 사역과 사랑을 기억하면서 이 땅에 오신 어린양 예수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 더욱 사랑하길 소망하는 한 주간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잡히시고 고난 당하시기 전이었던 수요일까지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는데요.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난주일 목요일

고난주일의 목요일은 굉장히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다양한 사건들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드라마로 따지면 완결편 직전에 많은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는 느낌을 주는데요. 가장 첫 번째 사건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마태복음 26 : 5~13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위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은 이 날도 병자들을 고치시는 사역을 하시며 베다니라는 예루살렘 가까운 마을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있으셨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아주 비싼 향유를 식사하시는 예수님께 붓습니다. 이를 본 몇몇 제자는 당시의 노동자 1연 연봉에 달하는 고액의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모습을 보고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 비싼 금액을 예수님께 부어버리는 것을 보며 분노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상한 점은 보통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와서 아무리 비싼 향유라고 머리 위에 부어버리면 그 사람이 행하는 다소 무례한 듯한 행동에 이런 무례한 행동을 당하는 사람을 위해서 화를 내야 일반적인 반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시선은 이런 난처한 상황에 처한 예수님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비싼 향유를 낭비했다는 생각에 분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자가 믿음으로 그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믿었고 그의 장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향유를 부었다고 말씀하시며 여자를 보호하시고 오히려 그녀의 믿음을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기억나게끔 하시는 축복을 더해주십니다. 그녀는 아마도 당시 유대사회에서 지위적으로 하층민이었던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을 기대와 소망으로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자신의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이때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 드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난주일 동안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대함으로 예수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그리고 예수님의 상황에 필요에 맞는 믿음의 반응들을 참 많이 보여줍니다. 앞서 함께 보았던 종려주일 때의 나귀 주인도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기다렸기에 주가 쓰신다 하라는 말에 군말 없이 나귀새끼를 내어주었고, 향유를 부은 여인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갈망했기에 가진 것을 다 드려 그분의 장례를 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전에 예수님께서 서 성전에서 논쟁을 마치시고 나오시면서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시련과 장래의 고난과 미혹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었는데요.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했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사용하심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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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배반하다

마태복음 26 : 14~16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이때부터 상황은 굉장히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침묵의 수요일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공회원들이 현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리해서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면 현재 예수님을 추앙하는 여러 사람 들으로부터 많은 비난과 저항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유월절이 지나고 예수님을 처단하기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이 유다가 대제사장들을 찾아와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하면서부터 예수님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그들이 급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상황은 매우 급변하게 되어집니다. 유다는 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에 예수님을 넘기겠다고 약속하며 그를 넘겨줄 방법을 그들과 함께 고민하며 그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가룟 유다는 이름 그대로 가룟. 즉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열심당원이란 당시에 유대 민족의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열망하는 독립운동가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유다는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 민족을 구원할 메시아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목적은 유대 민족의 해방이 아닌 전 인류의 해방이 목적이셨기에 영안이 열려있지 않던 유다의 눈에는 그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님은 어떠한가요? 나를 평안하게 해주시고 내게 축복 주시는 분인가요? 내가 생각했던 상황이 안 펼쳐진다며 우리도 유다처럼 예수님을 버리는 사람들은 아닌가요? 고난주간 우리의 중심을 유다의 행위를 통해서 돌아보고 살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진정한 모든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지혜자들이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
 

최후의 만찬
고난주일 목요일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마태복음 26 : 17~30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유월절의 전통대로 유월절을 준비하는 식사를 하게 되어집니다. 이때도 나귀 주인이 주가 쓰신다 하라 했을 때 나귀를 내어준 것처럼 예수님을 기다리며 준비된 사람이 예수님께서 그의 집을 쓰시겠다 하니 스스럼없이 그의 집을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내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난 주간에 이러한 준비되어 순종하고 쓰임 받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며 인내와 순종하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으니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강조드립니다 :)
 식사를 하시면서 예수님은 앞으로의 일들을 제자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제자들 중 배신자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 그를 팔지 아셨지만 제자들에게 누구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두려웠던 유다는 예수님을 떠봅니다. 25절에 보시면 유다가 랍이여 선생님이여 나는 아니지요 라며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따지지 않으시고 그의 양심을 다시 한번 흔들어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며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실 것을 빵과 포도주를 통해 이야기해 주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고 온 가족이 그 어린양을 나눠먹는 것처럼 인간의 죄악을 감당하시고 속죄사역을 완성하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어린양이며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야 함과 이것을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기억하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만찬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만찬을 하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가장 열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예수님은 기도하십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어 흘릴 만큼 간절한 기도를 하시는데.
39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2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겟세마네에서 이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함을 그리고 그때가 다가옴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마주할 현실에서 그들의 마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지만 그들은 피곤함으로 인해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을 두고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십자가라는 무서운 형벌 앞에서 떠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이미 인류의 대속 사업을 위해 이 땅에 자원해서 오신 하나님이셨기에 형벌이 두렵기보다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쁨으로 순종하며 나아왔던 예수님께서는 전 인류의 죄를 감당하셔야 하기에 하나님과 단절되는 고통을 십자가에서 느끼셔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잠깐이지만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고통은 예수님께 피가 땀이 되도록 기도하실만큼 두려운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가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고난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겟세마네에서 돌아가고자 하실 때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피곤함을 못 이겨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던 것을 보아 아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잠들어있던 제자들을 깨우시고 일어나 돌아가던 예수님과 제자들을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유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다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5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유다는 제사장들과 경비병들에게 자신이 입 맞추는 자가 예수님임을 말해주고 예수님을 만자자 약속한 사인 데로 랍이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춘다. 그러자 그 의미를 아셨던 예수님은 그들에게 순순히 잡혀가 주신다. 중간에 말씀을 생략했지만 베드로가 말고라는 경비병의 귀를 자르는데 이를 예수님이 치료해 주시고 칼을 휘두른 제자를 나무라시며 폭력을 행하지 말 것과 이 일은 하나님의 일임에 자신이 천군천사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러하지 아니하고 도살당하는 어린양과 같이 순순히 끌려갈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기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게 됩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공회에 끌려가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묻는 이들 앞에 당당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공회에 있던 자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한다며 그를 죽이고자 한다. 그 상황 속에 숨어서 예수님을 쫓아오던 베드로는 주변 사람들이 베드로를 알아보며 그가 예수님과 함께 하던 제자임을 말하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며 강하게 저주까지 하며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렇게 세 번의 부인을 하고 난 뒤 동일 틀 무렵 수탉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할 거라는 말씀이 생각나 심히 통곡하게 됩니다.
 

고뇌하는 본디오 빌라도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본인들 스스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를 다 시리던 로마법을 통해서 사형을 실행할 수 있었는데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 그를 사형에 처하는 형벌인 십자가형을 내려줄 것을 요구합니다. 빌라도는 유대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소동이 염려되어 로마에서부터 예루살렘에 내려와 있는 상황이었기에 총독으로서 그는 유대의 소동을 매우 염려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을 본인이 심문하고 그의 처분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의 대담을 통해 그에게 죄가 없을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그러하기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일 이유가 없다고 그에게 죄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며 이는 로마 황제 시저에게도 저항하는 것이라며 반란의 소지를 말하며 빌라도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듭니다. 빌라도는 민중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심히 매질한 다음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군중에게 보여주지만 그리하여도 민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하기를 외칩니다. 매년 유월절에 죄인하면을 석방하던 풍습을 알던 빌라도는 그러한 사면의 이유로 예수님을 석방시키고자 하였으나 유대사람은 당시에 또 다른 흉악범이었던 바라바를 사면하고 예수님은 사면하지 말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칩니다. 이러한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빌라도는 자신은 죄가 없다는 표현으로 손을 씻으며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허락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르셨습니다. 너무나 지친 육체였기에 여러 번 쓰러지셨던 예수님을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게 되어졌습니다. 지금은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지만 그의 후손은 믿음의 후손이 되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의도한 바가 아닌 상황에서 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또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였지만 그의 인생과 후손의 인생까지도 바꾼 십자가의 사건이 오늘날 우리 삶에도 믿음으로 순종할 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면 무거운 십자가가 아니라 행복한 십자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같이 사람들에게 모욕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받아야 할 모욕을 예수님이 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가장 처절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 또한 우리가 당했어야 할 고통이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영원한 형벌에 처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저 말없이 묵묵히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소리를 지르십니다. 그때가 바로 모든 죄를 짊어진 순간. 인류의 모든 죄가 그에게 감당되는 순간. 언제 함께 하였던 하나님과 예수님은 단절되고 맙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순간만큼 예수님은 버려진 것 같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계 되십니다. 다음날이 유월절이었기에 형집행하는 사람들은 12시간 이상 고통을 당해야 숨을 거두는 잔인한 십자가형을 빨리 끝내기 위해 죄인들의 다리뼈를 부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뼈를 부서트리기 전에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는 온전한 제물이 되었음을 예표하는 부분입니다. 상하지 않은 온전한 제물이 되셨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고난주간 토요일

 고난주간 마지막 날 토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다음 날입니다. 많은 슬픔이 예루살렘 성을 뒤덮었고 제자들도 아주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혼란함은 잠시요 예수님의 놀라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덤에 들어가신 예수님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고 무덤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요셉이라는 사람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서 그가 소유한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보관합니다. 당시에 유대사회에서는 동굴 같은 무덤에 큰 돌문을 봉인하여서 무덤을 만든 후에 시신을 보관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남은 유골들을 처리하였습니다. 그리하여서 예수님도 이와 같은 돌무덤에 들어가게 되셨습니다. 이전에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성전에 빗대어 이야기하셨기에 대제사장들은 경비병들을 예수님 무덤 앞에 세우고 무덤을 지키게 합니다. 혹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서 부활했다고 할까 봐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금요일 숨을 거두시고 토요일이 지나고 마침내 일요일. 이제 우리가 맞이할 부활절에 예수님을 부활을 하십니다. 무덤에 들어가신 예수님.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승리를 맞이할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요약

1. 고난주간 목요일에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며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되면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에게 잡혀가게 됨
2.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 없음을 알았지만 유대의 소동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결정을 하게 됨
3.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음
4. 예수님은 진짜 죽으셨고 무덤에 들어가셨음 그러나 그 후에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

 오늘 고난주간의 두 번째 시간으로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한 메시아임을 더욱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시간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고난주간동안 더욱 예수님을 묵상함으로 더욱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하는 힘을 얻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고난주간 후 찾아오는 부활의 승리를 여러분의 모든 삶에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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